[조선비즈] 코로나 외면한 ‘오픈런’… ‘아시아·디지털·MZ·리세일’ 명품 시장 판 흔든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여파로 글로벌 명품시장이 1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명품시장은 올 들어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성장을 만끽하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조선은 성장하는 명품 브랜드를 관통하는 4대 트렌드로 아시아, 디지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리세일(재판매)을 꼽았다. ‘뉴럭셔리 소비 시대’ 트렌드에 올라탈 수 없다면, 지속가능한 명품 브랜드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편집자주]

8월 20일 오전 9시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명품관 앞. 개점을 1시간 30분 남겨두고 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40여 명이 셔터 앞 에르메스와 불가리 진열장 사이 좁은 복도 양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긴 줄 맨 앞에 있던 서울에 사는 30대 이지원(가명)씨는 “생일을 맞아 생애 첫 샤넬 지갑을 사려고 새벽 4시부터 기다렸다”고 했다.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대기하던 박은지씨는 “7월 말 부산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점 샤넬 매장에서 확진자가 나왔지만, 5일간 휴점하고 문을 열었을 때도 오픈런은 여전했다”라고 귀띔했다. 국내 명품 매장의 오픈런은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는 상황을 무색게 하는 ‘흔한 풍경’이 됐다.



8월 20일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명품관 입구 셔터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위). 명품관 내부 샤넬 매장 앞에서 대기 번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이소연 기자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한 글로벌 명품 시장이 올 들어 빠른 회복세를 보인 배경에는 아시아뿐 아니라 온라인쇼핑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새로운 소비군단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투자 개념으로 소비하는 리세일(재판매) 열풍이 있다.

뉴럭셔리 소비 시대를 관통하는 4대 트렌드다. 이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지가 명품의 생사를 좌우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루이비통·디올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업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매출이 지난해 16% 감소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56% 성장으로 반전했다. 주가도 고공 행진한 덕에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세계 최고의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상반기 매출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상반기 대비 33%, 11% 각각 늘어난 에르메스와 LVMH 등은 예외적인 사례라며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은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런 양극화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아서앤그레이스 등 ‘K명품’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팬데믹이라는 위기 속 대변혁기를 맞이한 명품 산업을 조명하는 ‘뉴럭셔리 소비 시대’ 커버 스토리를 기획하고, 명품 브랜드의 지속 가능에 영향을 줄 트렌드로 아시아, 디지털, MZ, 리세일을 꼽았다. 명품 브랜드 전략 컨설팅사 에퀴테의 다니엘 랭거 최고경영자는 “명품 산업의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며 “명품 브랜드 절반은 10년 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팬데믹 이전 웃도는 글로벌 주요 명품 실적


① 아시아

8월 17일 중국이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제도화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이 알려지자 LVMH, 케링, 에르메스, 리치몬드 주가가 수직 낙하를 시작했다. 세계 4대 럭셔리 업체의 시가 총액은 8월 18~19일 이틀간 600억유로(약 84조1200억원) 증발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제한되자 중국 내 명품 매출은 42조원으로 전년 대비 31% 늘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세계 명품 소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중국인 비중이 2019년 33%에서 2025년 46~48%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명품 매출은 약 15조원으로 2019년과 비슷했지만 미국이 22% 감소하는 등 두 자릿수대로 위축한 선진국에 비해 선전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한국 법인은 지난해 각각 33%, 16%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김재환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이커머스부문장은 “명품 업체들이 코로나19로 부진한 국가의 매출을 아시아에서 만회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인기 상품의 공급을 늘렸다”고 전했다.

② 디지털화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 세계 명품 시장 매출이 역성장하는 동안 온라인 매출은 50% 가까이 늘었다고 집계했다. 명품 매출에서 온라인 채널 비중도 2019년 12%에서 지난해 23%로 확대됐다. 다만, 디지털화라는 게 유통 채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지난해 구찌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줄 모델들에게 가을·겨울 컬렉션을 보내, 모델 스스로 사진작가, 스타일리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자신의 일상생활을 소셜미디어에 담아내도록 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암울함과는 상반된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보여주며 용기의 메시지를 전했다.

③ MZ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구찌 가옥’. 구찌 100주년을 기념해 개장한 구찌 국내 플래그십 스토어 2호점이다. 홍보 영상에선 구찌 가옥 오픈에 맞춰 개사된 판소리 대중음악 그룹 이날치 밴드의 ‘여보 나리’가 신명 나게 울려 퍼진다. 김의향 패션 컬럼니스트는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MZ 세대에게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럭셔리 브랜드에 미래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모범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구찌는 MZ 세대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 유머, 정치적 올바름 등을 모티브(영감)로 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이미지를 확장해 고객층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명품 업체들이 공을 들일 만큼 MZ 세대는 명품 소비의 주요층으로 부상했다.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출에서 MZ 세대 비중은 2019년 49.3%에서 지난해 50.7%로, 현대백화점은 48.6%에서 65.8%, 롯데백화점은 41.4%에서 44.9%로 일제히 늘었다. ‘플렉스(Flex·과시)’ ‘욜로(YOLO·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소비)’라는 유행어는 명품 시장의 새 동력이 된 MZ 세대의 소비 패턴을 반영한다.

④ 명품 리세일

지난 7월 현물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가 만든 3번째 롤렉스 투자 상품이 출시 45초 만에 완판됐다. 지난 4월 시작한 1호 상품과 2호 상품의 기록인 30분과 50초를 경신했다. 조각 투자는 여러 명이 공동 투자한 뒤 차익을 나눠 갖는 것이다. 회사 측은 1, 2, 3호 각각 1억원 정도를 모집했다며 롤렉스를 구입한 뒤 다시 팔아 6개월 내 22~25%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명품 리세일 열풍의 한 단면으로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재테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MZ 세대의 투자 소비 행태가 중고명품 시장의 고성장을 이끌고 있다. MZ 세대는 중고품을 ‘남이 쓰던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생각해 순환 경제 행위에 참여하는 일’이라 여긴다. 딜로이트는 2018년 162억달러(약 19조3752억원)였던 명품 브랜드 중고 시장이 2026년 685억달러(약 81조9260억원)로 연평균 15.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토마이 세르다리 뉴욕대 스턴경영대 패션·명품 교수는 “명품 브랜드는 리세일 시장을 별개 시장이 아닌 다른 유통 경로로 볼 필요가 있다”며 “명품 업체가 제품 판매, 인증, 리세일 사업을 아우르면서 구매력은 다르지만 브랜드에 동등한 동경심을 가진 다양한 소비자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 대변화

 



글로벌 명품 시장 대변화